자본주의 4기의 발전과정
▶1기(1789~1870~1년) : 초기 산업자본주의 형성
1789년 산업혁명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한 대규모 공장이 발전하여 공장 제도를 확립시키고, 공장의 도시 집중을 초래한다. 영국을 선두로 시작된 자본주의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 속도는 나라마다 달랐다. 초기 자본주의는 60여 년 간 영국만을 선진공업국으로 하고 다른 나라는 농업국이라는 국제 분업관계가 유지되었다. 그 뒤 프랑스, 독일, 미국 등 후발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기계제 대공업이 발전한다. 이제 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로 전개되었다.
초기 자본주의의 이념은 고전적 자유주의였다. 이는 봉건적, 절대왕정의 억압에 대한 대항으로 시민혁명을 이루었던 자유, 평등, 박애, 이념으로 표현되었다. 농노를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노동자로 만든것, 자본가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 재산을 소유할 자유를 바탕으로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최대가치로 표현했던 사상과 체제였다. 대표적으로 아담스미스의‘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되는데 이는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가리키는 말이다.‘경제적 생산과정은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두면 만사가 저절로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로 전개되면서 공황도 세계적 공황의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최초의 세계적 공황은 1857년 일어났다. 그 뒤 1873년 대 공황은 20여 년 간이나 지속되면서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고 이 공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본주의는 산업자본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2기 (1871~1917~8년) : 산업자본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전환 - 제국주의 단계로 성장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후발 자본주의국들은 1873년 공황을 맞이하여 자본은 급격하게 독점화 한다. 기술의 발전과 주식회사의 설립, 은행을 통한 자본의 집중을 강화한다. 주식 소유자들이 소유권을 독점하도록 하여 독점자본주의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급속한 성장을 하고 상품수출경쟁이 격화되었다. 이 시기 세계 자본주의 중심 축도 영국에서 미국과 독일로 이전되었고, 산업 구조도 기술 혁신에 따라 경공업에서 중공업중심으로 발전하여 대 량생산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철강, 화학 기초소재산업을 중심으로 독점기업체의 형성) 대량생산으로 거대해진 기업들이 독점자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독점 자본에 의해 이 시기 부터 자유경쟁의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국가는 자본의 독점형성을 돕는데 나서기 시작한다. 금융자본의 성립으로 1873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이전의 자유경쟁에서 독점자본을 기축으로 하는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한다. 두번째는 철강이나 기계등 중화학 생산재부문은 소비재산업에 비교해 보다 많은 자본과 설비투자를 필요하며 막대한 투자자금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기간산업의 자금조달방법으로 주식회사제도가 도입, 즉 이전의 은행을 통한 신용대부가 아니라 주식시장을 통한 투자 모금 방식으로 전환한다. 주식회사의 출현은 주식 자본의 성장과 자본성격의 변화를 일으킨다. 개인기업으로부터 주식자본으로의 발전에 따라 자본기능의 분할이 이루진다. 기능자본과 소유자본으로 독자적인 전문경영인과 주식소유자로 분할된다. 자본과 생산의 집중 및 집적으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흡수합병 되거나 그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생산, 판매를 독점 지배하는 독점자본은 카르텔(상호독립적인 개별 기업이 가격, 판매, 원료구입, 생산량 등을 담합), 신디케이트(생산면에서 독자적인 개별기업이 공동판매망을 구축), 트러스트(이전의 독자적인 기업이 생산, 판매, 금융전부를 지배하는 독점조직), 콘제른(형식적으로 독자적인 이종산업의 기업이 최대 자본가의 집단그룹에 금융적으로 종속)등의 형식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독점가격을 형성하여 독점이윤을 획득한다. 독점자본의 형성은 금융부문에서 독점은행(금융자본)의 출현을 가져왔다. 중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막대한 시설 및 설비투자 자금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은행 차원에서는 그에 대한 리스크가 고도로 증가한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분산을 위한 은행간 합병, 흡수, 계열화가 가속화된다. 이렇게 형성된 거대독점은행은 거꾸로 거액의 장기 대출자금이 묶여 있는 까닭에 기업간 경쟁격화로 말미암아 생기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업 결합을 촉진한다. 이 거대독점기업의 산업자본과 독점은행의 은행자본은 이 과정에서 유착, 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자본 소위 ‘금융자본’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독점자본의 사회적 결과와 혁명운동의 고양으로 독점자본의 사회적 결과를 살펴보면 비독점부문인 중소기업은 자기상품을 비독점상품으로 판매하고 독점가격의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독점자본에 수탈되고 공산품과 농산품 역시 마찬가지로서 농민 역시 독점자본에 수탈 노동자들의 임금이 독점가격에 비해 인상되지 않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독점자본에 의해 수탈 독점 공업국과 식민지 종속국사이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독점자본은 사회의 각 부문을 종속화, 계열화시켜 사회적 모순을 심화시킨다 혁명운동의 고양으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노동자계급의 집중도를 강화하고 한편에서는 빈곤이 심화되면서 강력한 노동자운동을 형성하게 하고 발전시킨다. 자본주의의 독점화 단계에 노동운동 안에서는 혁명적 운동이 점진적으로 고양된다. 식민지 분할을 통한 제국주의간의 대립이 격화로 금융자본과 결합한 독점자본은 투자시장, 판매시장, 원료자원의 확보를 위해서 독점의 세력 범위를 확대하는 세계적 시장개척에 나서게 된다. 선진자본주의국에서 일국적 규모의 과잉생산은 이윤율저하를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자본은 보다 유리한 투자, 높은 이윤율을 찾아 해외로 이동한다. 식민지 종속국에 대한 차관공여, 채권투자, 현지 직접투자, 증권투자등의 방법으로 자본수출을 통한 수탈이 시작된다. 이로 인해 국제적 독점간 투쟁이 시작되고 세계시장을 분할 지배하는 식민지 경쟁이 심화된다. 결국 세계시장 분할 지배 경쟁은 영국을 선두로 한 자본주의 국가 간의 세계의 식민지 분할, 제국주의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열강에 의한 세계의 영토분할 완료되어 세계의 모든 영토는 남김없이 제국주의에 의해 분할된다. 영국 전 식민영토의 45%, 전 식민지 인구의 69%지배, 프랑스 각각 14%, 9.8% 로 분할되었다. 각 국가의 금융자본주의 분파사이의 경쟁, 독점이윤에 대한 쟁탈전, 세계시장에서의 분할투쟁등 모순이 첨예화되고 이것이 전쟁으로 폭발, 독점자본의 침략적 속성이 발현된다. 또, 자본주의 국가 간의 식민지 획득경쟁, 재분할경쟁이 심화되면서 제 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이 발발하게 된다. 이 전쟁으로 생산력이 파괴된 유럽은 타격을 받고 영국 중심의 세계체제는 무너진다. 반대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연합군에 차관공여와 수출을 늘린 미국은 제 1경제 강대국이 되고,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시기 전쟁으로 인한 민족주의적 동원으로 민중들은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서게 되면서 차츰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제국주의 투쟁이 활발해지고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 물결친다. 자본주의 내 노동자 자본가의 계급간의 투쟁이 격화되는 시기이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의 결과 식민지의 국부를 제국주의 독점기업이 수탈하면서 식민지종속국의 경제구조를 원료공급 및 농업생산만으로 왜곡시키고 편향시킨다. 결과 심각한 실업과 빈곤화가 초래된다. 이런 상황에서 반봉건적 지배층과 자본은 민중에 대한 폭력적 지배로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독재정권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제국주의적 독점자본은 자국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이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식민지 초과이윤을 획득(지극히 낮은 임금과 대단히 높은 판매가)한다. 이러한 서유럽 제국주의국가들은 식민지에서의 초과이윤 축적으로 이후 사민주의적 노동자에 대한 개량정책이 가능하게 하는 물적 토대가 되기도 한다.
▶3기 (1918~1970년)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전환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전환된 원인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첨예화되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반제국주의 운동이 확대되고 러시아 혁명에 의해 각국의 혁명운동은 고양되기 시작한다. 민족해방투쟁으로 인한 식민지체계의 위기와 러시아 혁명(1917년)으로 인한 사회주의 성립으로 시장이 축소된다. 시장은 축소되고 자본주의 모순이 확대, 격화되어 세계사상최대의 1930년 과잉생산공황이 발생한다. 이 공황에서 탈출하는 길을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환에서 찾는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국가에 의한 직접적인 경제개입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독점조직과 융합하고 독점조직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가는 단계를 국가독점자본주의자라 한다. 이는 독점자본이 국가를 직접 지배하고 이용하여 높은 독점이윤의 획득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1930년 대공황과 더불어 국제통화제도인 금본위제가 붕괴되고 관리통화제도로 넘어간다. 이는 국가가 금보유고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자유로이 통화와 신용을 부여할 수 있게 되어 자본을 위한 시장을 창출,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대공황에 대한 위기대응전략으로 독일, 일본은 파쇼체제를 탄생시키고, 미국에서는 국가의 통제 하에 독점을 강화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뉴딜정책 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어 결국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바로 제 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 발발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특징을 살펴보면, 경제위기를 극복을 위한 경제의 군사화를 중심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현대자본주의에 항상적 체계로 발전한다. 2차대전 후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세계 시장이 탄생하고 식민지체계의 위기가 한층 격화된다. 구식민 체계는 전면적 붕괴과정에 돌입하고 미국의 원조를 중심으로 하는 신식민지 체계가 성립되기 시작한다. 기간산업의 국영화로 국영기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하여 독점자본들에게 원료, 반제품, 서비스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국가가 직접 기업가 역할을 하는 국영부문, 또는 공공부문이 대대적으로 출현한다. (독일의 경우 총국미소득중 국가재정이 차지하는 비율이 1913년 14.3%에서 1938년 32%, 1970년에는 45%에 달한한.)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바탕으로 한 고전적 자유주의의 종말이었다. 국가의 시장경제 적극개입을 통한 사회보장제도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케인즈주의가 대두된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사민주의 정책이 펼쳐진다. 케인즈주의 대두는 1930년대 대공황과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회주의권 대두로 자본주의 시장의 45%가 줄고, 노동자의 계급투쟁은 고조되었다. 그런 조건에서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는 전쟁으로 초토화되면서 새로운 자본축적의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 시기에 주류를 이룬 이념이 바로 ‘유효수요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케인즈주의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국가가 시장경제에 제한적으로 개입하여 완전고용, 사회보장 등을 추진하여 수요를 확장하고(노동자들을 소비의 주체로) 공황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케인즈주의를 바탕으로 사민주의 정책이 발전하게 된다. 2차 대전 이후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 식민지체제의 해체, 자본주의 중심국가에서의 민주화운동 등 새로운 정세 하에서 자본주의는 70년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황금기’를 구가하고 고도성장과 완전고용이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상징으로 되었다.
▶4기 (1970년대 현대불황~현재까지) 신자유주의 :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새로운 변종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자본주의는 장기적인 자본축적 토대 위에 30여 년의 장기호황을 누린다. 그러나 1970년대에 2차례의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다시 생산 증가가 둔화되고 심각한 경기불황(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빠지고 저성장이 지속된다. 다시 이윤율 저하의 경제위기(공황)가 도래한다. 다시금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자본의 시도가 진행되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축적 경로를 찾게되고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제4기에는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와 공황의 시작되었는데, 1960년 대 말부터 거대해진 기업과 금융자본들의 세계 경쟁이 격화되고 미국 중심 체제인 브레튼우즈체제가 장애물로 느끼게 되어 결국 붕괴되고 만다. 자본이 새로운 국제 질서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석유위기가 시작되었다. 석유를 사느라고 산유국에 들어간 돈은 생산 시장에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 소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도시에 생산은 감소하고, 인플레이션은 증가하고, 수익성도 1/3 감소했다. 생산에 대한 이윤 감소는 생산 감축과 더불어 자본가들이 생산적 투자보다는 투기를 통한 이윤 획득으로 방향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 결과 세계은행체제도 균열되기 시작했다. 독일 최대은행인 헤어슈타트은행이 외환투기에 따른 손실로 도산하고 여러 은행에 많은 손실을 입히게 되어 국제 금융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공황은 시작되었다. 1970년대 공황의 특징을 보면, 생산은 급속히 감소했으나 높은 인플레이션 유지하였고, 독점기업의 이윤은 생산물의 가격을 독점적으로 유지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점에 의해 주도되는 물가의 경직성으로 인하여 오른 가격은 내리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유지되었다. 이렇게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난 경우를 스태크플레이션이라고 한다. 공공부문에서 적자가 발생했는데 공황으로 세금이 줄어들어 정부 수입은 감소한 반면, 실업수당은 증가해 정부지출부담은 증가했다. 케인즈주의에 근거한 사회복지의 확대는 재정 적자폭을 늘려놓았다. 그런데 공황이 시작되면서 대규모의 정부 적자를 통해 수요의 급속한 감소를 메우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 국가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공공부문의 확대를 더 이상 바라지 않았다. 결국 선진국의 구조조정 추진이이루어졌고, 제조업생산이 축소되고 서비스업이 급속한 성장을 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계속적인 이윤율 하락을 경험 독점자본은 제조업은 노동비용이 싼 개발도상국으로 이전시키고 첨단산업, 우주항공산업, 정보통신산업 등의 고부가가치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새로운 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게 된다. 제4기에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발흥으로 제 3세계의 성장으로 초국적 금융자본은 선진국의 산업구조조정의 결과 제 4세계가 제조업의 투자처로 각광받게 된 제 3세계로 급속하게 뻗어나간다. 1970년 저개발국들의 축적속도는 선진국들에 비해 엄청나게 빨랐다.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로 지칭되는 동아시아 4개국의 급속한 자본축적은 선진국의 산업구조조정에 의해 제조업이 제 3세계로 이전한 결과이자, 오일달러로 유입으로 자금력이 확대된 금융자본이 저임금이라는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새로운 투자처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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